출신의 존경하는 주선애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장신대 명예교수인 주선애 교수님은 1958년에 뉴욕신학교(The Biblical Seminary in New York, NYTS의 옛 이름)를 졸업할 당시 34세였습니다. 그 때 교수님은 이미 인생의 많은 고난을 겪으신 뒤였습니다. 교수님은 1924년 평양에서 태어나셨고, 어린 시절 많은 형제들이 질병으로 그분의 곁을 떠났고, 교수님은 사랑스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교수님의 할머니는 평양 근교의 가까운 산에 매일 새벽 동트기 전에 올라서 그 어리고 불쌍한 손녀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주 교수님도 새벽 안개속에서 하루가 밝기 전에 한 시간 이상을 열정적으로 기도하시던 할머니를 쫓아 그 언덕을 올랐던 일을 기억한다고 하십니다.

주선애 교수님은 1941년 평양 정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 하셨고 1950년 6.25로 인해 북한의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평양신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셨습니다. 그후에 주 교수님은 서울에 있는 장로교신학대학에 입학하셨고, 다시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옮겨서 1953년에 졸업하셨습니다. 대학 졸업후 당시 신학교육을 마친 여성에게는 목회를 위한 기회가 많지 않음을 알았을 때, 본교 출신이며 대구 제일 장로교회 목사님이셨던 이상근 목사님의 추천으로 주 교수님은 The Biblical Seminary in New York(본교의 옛 명칭)에 지원하게 됩니다. NYTS는 이미 많은 여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주 교수님을 반갑게 맞아 줄 것을 확신한 이상근 목사님의 권유로 주 교수님은 본교에 지원을 했고 1956년 가을학기부터 뉴욕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뉴욕시 49번가에 위치한 뉴욕신학대학원에서의 생활은 주 교수님의 영성생활에 커다란 도전을 가져다 줍니다. 뉴욕시에는 그 분이 새벽이면 항상 올라가 기도하던 그런 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14층 신학교 건물과 그 꼭대기에 배구장과 운동장비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 산에 올라 기도하는 대신에 주 교수님은 매일 새벽 5시면 옥상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주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곧 다른 신학생들이 교수님의 기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기억하는 이 특별하고 중요한 세명의 기도 동역자들은 Pat Robertson, Eugene Peterson, Richard White였습니다.

주 교수님이 본교에 재학하던 시절 몇몇의 다른 한국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이 한국 학생들은 주 교수님의 기숙사방에 모여서 매주 저녁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복도 맞은 편 방을 사용하던 일본 출신의 아이코 기타가와라는 학생이 하루는 주교수님에게 기도회에 같이 참석하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요청은 주 교수님을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하며 억압했던 나라였고, 이로인해 당시까지도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인을 향한 적개심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타가와는 한국어를 할 줄도 몰랐고, 다른 한국 학생들도 일본어로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 교수님은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통성기도를 좋아하는 반면에 일본사람들은 기도문을 외우는 형태의 기도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교수님은 일본인 친구와 함께 기도하기는 너무나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본인 친구는 계속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고, 마침내 주교수님은 기도회에 초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명의 한국 학생들은 그들이 무엇을 할지를 계획했습니다. 기도 모임중 한명이었던 김 앤드류 덕율(Tuk Yul Andrew Kim)이라는 친구가 주기도문을 일본어로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타가와와 김덕율 친구가 함께 일본어로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기도회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할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기도회 밤이 되었습니다. 기타가와와 한국인 신학생들이 주 교수님의 방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김덕율 친구와 기타가와가 일본어로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덕율은 자신이 일본어로 주기도문을 끝까지 외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 교수님과 일본인 친구 기타가와는 마주보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기도 모임에 있던 모든 친구들은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주 교수님은 그 때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성령이 일본인들을 향해 있었던 마음의 벽을 무너뜨렸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 모두 멀리 떨어진 이 곳 뉴욕에 있는 신학교에서 하나님께서는 일본과 우리 사이를 끝까지 가로 막고 있는 깊은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버릴 수 있으시다는 것을 배울수 있었어요.”

1958년 신학교에서 종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마치신 주 교수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셨고,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숭실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196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서울에 있는 장로교신학대학의 신학 교수직을 맡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후 23년 동안이나 장신대학교에서 다음 세대의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 교육과 영성 형성에 대해 강의하셨습니다. 또한 1984년부터 1987년까지는 신학대학원의 학장을 지내기도 하셨습니다. 1989년에 은퇴하실 때는 한국 교회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 인정 받으셨고, 한국 교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고문의 역할로 섬기기도 하셨습니다. 주 교수님은 은퇴 이후에도 석좌교수로 계신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총장 하용조 목사) 등에서 꾸준히 강의를 하시며 후학들을 지도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수많은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2005년 부터는 서울에 있는 탈북자종합회관의 대표로서 탈북자들을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기대되는 것은 2011년 가을에는 우리가 주 교수님을 본교 NYTS의 종교교육 및 영성 분야에 관한 교환교수로 가을학기부터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교는 2011년 5월 26일 서울에 있는 명성교회에서 주선애 교수님을 위한 오찬을 겸한 특별 예배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명성교회의 담임 목사이신 김삼환 목사님과 주 교수님의 선배께서 이 예배에서 설교를 맡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의 총장이신 Dale Irvin 교수님과 본교의 여러 관계자분들도 주 교수님이 일생을 통해 보여주신 탁월한 섬김과 지도력에 경의를 표하는 자리에 함께 할 것입니다.

주선애 교수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본교는 이 행사를 좀더 나은 행사로 만들기 위해 영구적인 기부 기금을 마련하는 특별 주선애 기금 조성위원회가 이미 구성되었습니다. 본 기부 기금 마련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 혹은 다가올 5월 26일에 한국에서 있을 명성교회에서의 축하예배에 대한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NYTS 총장실(전화 (212) 870-1241 또는 이메일(dirvin@nyts.edu)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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